[문화산책] 우리 사회의 시각적 표정
남가주 한인사회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이상모 씨가 ‘Logo LA+plus’라는 제목의 흥미롭고 의미도 깊은 책을 발간했다. 그가 지난 50여년간 디자인한 수없이 많은 기업체, 회사의 로고, 심볼 마크 디자인 중 234점을 엄선해서 실제 사용사례와 함께 소개한 아담한 책이다. 이상모 씨는 남가주 한인사회 광고와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터줏대감이자 산 증인이다. 50년도 넘는 긴 세월을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감탄스럽고 존경스럽다. 이 책은 한 디자이너의 작품집이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서서, 남가주 한인사회의 성장 과정, 특히 경제 발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도 가치를 갖는다. 기업체와 회사의 변화무쌍한 흥망성쇠를 구체적인 조형을 통해 실감 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책에 실린 작품들을 보노라면 “아, 옛날에 이런 회사가 있었지…로고를 보니 생생하게 기억나네”라고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바로 이것이 디자인의 힘이다. 한 사회의 미의식이나 품격을 보여주는 시각적 요소는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생활 속의 미술들이다. 크게는 도시계획부터 작게는 점포의 간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광고나 다양한 인쇄물에 이르는 그래픽 디자인들….그런 시각적 요소들은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기업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이나 광고 디자인은 그 사회의 역사, 특히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부분의 역사를 살펴보고 갈무리하는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흔히 상업적 광고 디자인 작품은 소비되어버리고 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회, 한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미국 내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LA코리아타운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민의 활성화로 한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상권이 형성되고, 한국 대기업이 지사를 개설하고, 언론사도 문을 열고, 한인 은행 같은 규모가 큰 업체들이 설립되면서, 수준 높은 디자인에 대한 요구도 생겨났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광고기획사들이 문을 열고,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활동도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 대부분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이민 온 전문가들이 사무실을 열고 활동했는데,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준 높은 디자인 작품을 남겼다. 디자이너 이상모 씨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대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초창기부터 활약하던 디자이너 중 아직도 현역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이상모 씨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한인사회 초창기의 그래픽 디자인 자료들은 별로 남아있지도 않고,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특히 컴퓨터를 사용하기 이전의 자료들은 없어져 버린 것이 많다. 이런 현실에서 이상모 씨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작품을 깐깐하게 갈무리하고 정리해 놓아서, 그 작품들을 통해 한인사회 디자인 역사의 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흔히 남가주 한인사회를 평할 때, ‘서울시 나성구’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사회의 판박이, 그것도 변두리 수준의 베끼기라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은데, 그것은 그릇된 편견이다. 실제로 살펴보면 그 시대 우리 사회의 특성이 잘 녹아 있고, 한국의 장점과 미국사회의 좋은 점이 조화 융합을 이루거나, 한국적 가치관에 미국적 정신세계를 더한 바람직한 예들도 적지 않다. 이상모 씨의 그래픽 디자인 작품들도 그런 긍정적 사례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사회 시각 그래픽 디자인들 한인사회 디자인 남가주 한인사회